불이문을 지켜준 수령 500년 팽나무 눈길 사로잡아

<왕소나무 위치에서 바라본 금강산 건봉사 전경>
<건봉사의 유래를 상세하게 기록해 놓은 안내문과 범종각>

[건봉사(고성)=권병창 기자] 그림 같은 전각과 층루 기세 날아갈 듯
봉황의 날개 의연히 아침 햇살을 띄었구나

은상(銀床) 위 불상은 영묘한 덕에 번뇌 없고
하늘이 아끼는 값진 먹 향기 다하지 않네

열두 방아소리에 산 울리려 하고
천개 만개의 달 비쳐 강물은 빛이 나네

봉래에서 늙은 나그네 돌아오는 길에
또 동림을 향하여 긴 휘파람 부네---------박윤북(朴允默,1771~1849)

고즈넉한 천년고찰 건봉사(乾鳳寺)는 전국 4대 사찰의 하나로 천의무봉 금강산과 오랜 명성을 누려온다.

만해 한용운 선생의 건봉사급건봉사말사사적지(乾鳳寺及乾鳳寺末寺史蹟)에는 신라 법흥왕 7년(서기 520년)에 아도화상이 원각사(圓覺寺)를 창건했다는 기록이다.

그 후 고려 태조 20년(서기 937) 도선국사가 중수한 뒤 서봉사라 불린다.
건봉사는 고성군 거진읍 냉천리의 금강산 남쪽자락 건봉산에 있는 고찰이다.

사찰에 당도하면 첫눈에 숙연함이 저절로 깃들며, 이내 주변의 수령 100년을 족히 넘긴 금강소나무는 푸르른 수세에 피톤치드마저 안겨주는 마음의 선물로 손짓한다.

사찰 경내를 거닐다보면, 초겨울 추위와 시간가는 줄 모르리만치 아늑함과 고요함이 찾아들며, 풍광에도 원행 탐방은 상쾌함으로 밀려든다.

<수세가 빼어난 금강소나무의 자태가 아름다움의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1920대에 촬영한 금강산건봉사 사진>

자연풍림속에 자리한 건봉사는 과거 1592년 임진왜란 때는 사명대사가 승병을 모아 훈련시키던 장소로 기록된다.
종전 후 일본에 사신으로 다녀오면서 왜군이 훔쳐간 부처님 치아사리를 되찾아와 봉안했다.

조선시대 때 3,200여 칸에 이르는 대찰이었으나 몇 차례 화마(火魔)를 입어 중건을 했다.
1950년 한국전쟁 때 완전히 폐허가 됐다가 1989년 이래 현재까지도 계속 복원작업을 하고 있다.

이곳은 6.25 전쟁 중 휴전 직전까지 2년여에 걸쳐 아군 5·8·9사단 및 미군 제10군단과 공산군 5개 사단이 16차례의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건봉산 전투 전적지이다.

<유난히 수세가 아름다운 왕소나무 자태>
<건봉사 경내에 보관중인 1920년대의 금강산 비로봉 사진>

당시 건봉사는 완전히 폐허가 됐으나, 서기 1994년 부터 대웅전, 팔상전, 염불만일원, 종각, 사지 등이 각각 복원, 오늘에 이른다.

한국전쟁전 건봉사는 총 642칸과 보림암 등 124칸의 18개 부속암이 있었다.

<수령 500여년이 된 팽나무가 불이문 바로 옆에 자생하고 있다.>

한편, 건봉사 경내에는 수고 15m 수령 500년의 팽나무가 왜란과 전쟁의 참화를 고스란히 목격한채 생육여건이 뛰어난채 자라고 있다.

건봉사지 강원기념물 제51호로 불이문을 지키고 있는 팽나무는 건봉사를 지켜주는 상징목으로 보호수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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